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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C 3000 이야기 - 2편 : 그루브의 MSG, 로저린 그루브!

시퀀서 이야기를 해 보자


 MPC3000 의 시퀀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AKAI의 ASQ-10이라는 기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볼까 한다. 사진은 아마도 제품 출시 당시의 잡지 광고일 듯 하다.


 이 무슨 악기 스럽지 않은, 마치 80년대 슈퍼마켓 계산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외형의 기계란 말인가. 실제로 크기도 만만치 않게 크다. 좌측 가운데에 보이는 직사각형의 시커먼 부분이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니까, 전체의 폭이 적어도 데스크탑 컴퓨터보다 넓다. 거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측의 알 수 없는 버튼들과 맨 위의 액정 화면은 어딘가 모르게 MPC의 시퀀서부와 비슷하다.

 

 사실 맞는 이야기이다. MPC에서 샘플러 기능을 제외한, 시퀀서부만 따로 떼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ASQ-10 하드웨어 시퀀서다. 여기에도 역시 AKAI 로고 우측에 로저린 사인이 있다. 

 

 근본을 따져보자면, 태초에 기타리스트였던 Roger Linn이 제작한 Linn Drum 이 있었고 그 후속으로 Linn 9000 이라는 드럼 머신이 있었다. 린 드럼(Linn Drum)은 당시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의 앨범에도 쓰였던 것으로 유명한 드럼머신이다. 린 드럼이 처음 나온게 80년대 초반, 그러니까 82년쯤 이었나? 암튼 그런게 있었다. 요즘 드럼 샘플 라이브러리에도 가끔 보이는 그 이름 Linn Drum 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가격이 어마무시했던지라, 당시에 $5,000 정도의 가격에, Linn 9000 같은 경우 Fully Expended 버전이 $7,000 였다고 한다. 지금도 오천불 하면 눈이 띠용~ 하는데 80년대에 오천불이라면...! 때문에 마이클 잭슨형이나 프린스형 급의 뮤지션 아니면 큰맘 먹고 드럼 머신 하나 들이기엔 가격이 너무 쎘다. 88년 겨울에 발매된 MPC60도 정가는 $5,000 이었으니, 이 시절엔 음악 한번 하려면 오천딸라는 기본으로 필요했었나보다. 뒤 이어 MPC60 MkII 가 나왔고, 그 다음이 바로 지금 다루고 있는 MPC3000 이다. 94년에 출시가 되었고, 아마 출시 당시 가격이 $3,000 정도였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오천딸라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삼천딸라도 역시 작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94년에 486 컴퓨터 한대 사려면...? 거기에 JV같은 모듈 하나 사고 E-MU 샘플러 한대 들이면 만딸라는 기본으로 깨진다. 농담으로 90년대 중반에 컴퓨터 음악 하겠다고 하면 방에 천만원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고 했었다.

 

농담같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로저린 할배의 작품 Linn Drum - 오천딸라!!!>

 

 

 린드럼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옆으로 샜다.
 아무튼 아카이가 로저린과 손 잡고 만든 그루브 머신이 MPC60 (MK2포함), MPC3000, 그리고 ASQ-10이다. (글을 쓰다가 보니 자꾸만 asr을 타이핑 한다. 그놈의 엔소닉...!) 여기에는 로저린이 아카이와 함께 만든 (이라고는 하지만, 로저린이 대부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진) 특유의 패턴 기반의 시퀀서가 탑재되었고, 이게 당시로서는 꽤나 출중했기 때문에, 저렇게 따로 시퀀서만 분리된 제품도 나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패턴 시퀀서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16개의 패드를 두드려서 리듬 패턴을 만들고, 박자가 엇나간 것은 적당히 퀀타이즈도 된다.
 물론 스텝-에디트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찍는' 방식도 가능하다. 화면을 보고 마우스로 클릭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리고 당시엔 꽤나 준수한 96ppq (Pulse per quarter note - 4분 음표당 분해능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의 해상도를 가진 시퀀서에 타이밍적으로도 꽤나 좋았나보다. 가끔 이야기 하는 '미디 타이밍이 빡빡한 느낌이네요' 하는 식의 표현이 이 시절에 나온 말이다. 당시엔 컴퓨터의 클럭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고 소프트웨어의 성능도 그닥 준수하지 못해서 미디 시퀀싱을 할 때도 타이밍이 들쑥 날쑥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아는 (알면 노땅)인 아타리 1040 시리즈의 경우 8비트 컴퓨터임에도 불구하고 미디 타이밍이 굉장히 좋아서 수많은 프로뮤지션들이 사용했다는 전설도 있고 그렇다.
 최근 영국의 한 웹 사이트에서 로저린 할배의 인터뷰 기사가 하나 실렸었는데, 할배의 말씀에 따르면 그건 그때 이야기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컴퓨터 안에서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나서 부터는 90년대의 타이밍 이슈는 이제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대의 외장 장비를 동기화 시키는 목적이 아닌 한에서는 컴퓨터 자체의 미디 타이밍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신다.
 그러면 도데체 로저린 그루브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정말로 Groove is on your mind (그루브는 니 맘 속에) 였던 것인가? 드레 오빠의 MPC에 대한 칭송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스눕 1집은 MPC3000으로만 만든거라매?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로저린 그루브의 마술이 정말 있긴 있었다.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드레 오빠는 아마 스윙 퀀타이즈 62%를 좋아하셨다고 했던것 같다. 61% 였나? 가물가물...어쩌면 60%일지도? 그거나 그거나. 포인트는 이거다. 

 

"스윙 퀀타이즈. 몇 %로 하시겠습니까? "

 

 그냥 발로 비트 찍고 나서 변신 마법 소녀물에서 나오듯이 '비트의 신이시여, 그루브의 정령이시어 내게 환상의 리듬을 주세요!' 라고 외치면서 그루브 퀀타이즈 버튼을 누르면 환상의 마법이 뾰로롱~ 해서 마구리 비트가 갑자기 어깨가 들썩이는 비트로 거듭나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일단 드럼 소스가 좋아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다음에 좋은 조합의 비트를 만드는 것도 필수라는 것, 길게 쓰면 손가락 아프다. 태초에 내 안의 멋진 영혼의 비트가 손끝을 거쳐 패드를 통해 MPC에 전달된 다음에서야 비로소, 스윙 퀀타이즈다. (애초에 영혼에 그루브가 없다면... oTL) 어느 정도가 마음에 드는지는 비트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 다를테니, 자기가 좋아하는 값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MPC의 스윙 퀀타이즈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길게 하면 좀 힘들고, (사실 나도 다 이해 못한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스윙감을 주는 미디 프로그래밍 프리셋 같은거 라고 할까. 스트레이트 비트와 스윙 비트의 그 어딘가쯤의 사이에서 노트를 살짝쿵 이동해 줘서 기분 좋은 그루브감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막무가내로 스트레이트한 박자를 무조건 바꿔버리면 스윙감이 아니라 그냥 박자를 저는 느낌이 나온다. 그래서 박자가 저는 느낌이 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노트를 뒤로 밀어주는데, 로저린이 설계한 방식은 비트 내에서 짝수 번째 16분 음표를 유저가 설정한 % 값 만큼 뒤로 밀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 는 스윙이 아니므로 각 8분음표의 두번째 16분음표 자리의 음표도 모두 동일한 (스트레이트한) 위치에 있게 된다. 그리고 2/3이 되는 지점. 그러니까 66%(혹은 67%) 지점은 셋잇단 음표의 지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스윙을 연상할때 느끼는 '탓-타 탓-타' 하는 바로 그 짝수 박의 셋잇단 음표의 느낌이다. 그러니까 66%의 완벽한 셋잇단 느낌을 기준으로 앞 뒤로 밀고 당겨주는 것에 따라서 비트의 '스윙감'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 정답이란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튼 느낌 나올때까지 가보는거다.
 간혹 트랙 메이커들마다 특정 음을 미세하게 뒤로 민다던지 당긴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루브감을 내는 자신만의 비밀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로저린의 기본 철학은 노트가 나오는 타이밍과 스윙이 정확하다면 노트가 정확한 시간의 슬롯에서 연주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한다. (딜라횽 지못미)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기준이 되는 (시퀀서 )하드웨어 자체의 정교함이 전제가 되면 딱 맞는 위치에서 의도한 노트가 재생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이다.

 로저린의 최초의 드럼 머신 LM-1 이래로 해상도는 대체로 4분음표 당 48개의 해상도를 갖고 있으며 (48ppq),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최근 작품인 템페스트의 경우 역시 96ppq의 해상도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큰 덩어리의 그루브는 24ppq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래된 하드웨어 그루브 머신이 현재의 시퀀서보다 낮은 해상도를 가진 것도 흔히들 말하는 그것들만의 맛(?)에 어느정도 기여를 한다고 본다.)
 재미 있는 사실 한 가지는, 퀀타이즈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메모리(RAM)의 가격이 비쌌던 80년대 이전에 메모리를 아끼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하다가 생긴 일종의 버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시리즈 마지막편에 함께 던져드릴 관련 페이지 링크를 참조해 주시면 좋겠다.

 

 장황한 퀀타이즈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내자.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그럼 왜 로저린 퀀타이즈는 MPC60과 3000에만 적용이 됐었고, 이후에는 자취를 감춘걸까? 사실은 그 이유때문에 로저린 그루브는 더욱 더 환상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단은 최근의 로저린 할배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시퀀서를 설계해준 댓가로 악기에 자신의 시그니쳐와 로열티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아카이가 당시엔 나름 저가의 MPC2K 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로저린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아카이는 그때의 아카이가 아니라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AKAI는 경영난 때문에 대만의 자본에 인수되어 운영중이다가 -> 2021년 2월 현재 미국계 회사 소유라고 합니다. <댓글 제보 감사합니다!^^>), 적어도 로저린 할배의 입장에서는 아카이에게서 갑자기 버림받은 것 같다. 아마도 로열티가 원인이었겠지. 이른바 어른들의 세계, 비즈니스 이야기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로저린의 MSG가 빠진, 김 빠진 콜라가 아니라, MPC는 여전히 MPC였던거다. 큰 틀 안에서의 그루브 머신의 구성 요소는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요즘은 왠만한 시퀀서에 이 스윙 퀀타이즈 기능은 다 탑재되어 있고, 심지어는 이베이 등지에서는 유명 하드웨어 악기들의 시퀀서에서 퀀타이즈 패턴만 미디 노트로 뽑아놓은 소스를 파는 업자도 있다. 심지어는 요즘 아카이의 MPC 소프트웨어는 그루브 퀀타이즈는 물론 유명 그루브 머신들의 오디오 아웃풋을 시뮬레이션 해주는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다. 직접 써보진 않아서 결과값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스윙 퀀타이즈 이야긴데, 2000년대로 오면서, 특히 2010년이 넘어가면서 팝 음악의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 K-POP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아,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주류 음악의 비트들이 대체로 스트레이트한 쪽으로 많이 변화했다. 힙합의 경우에도 트랩(Trap)의 하이햇은 그냥 스트레이트로 다다다닥~ 하고 나가기 때문에 닷-다 닷-다 하는 느낌의 조금 느린 90년대식 힙합 리듬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라졌다. 하우스나 일렉트로니카쪽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이 그루브 퀀타이즈를 남발하거나 과용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트랙 제작에 있어서도 DAW 안에서 거의 모든게 해결이 가능해지다 보니 신스의 사운드 메이킹과 미디 프로그래밍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버렸다. 예전에는 미디 작업을 한다고 하면 '찍는다' 라고 표현했지만, 요즘 '찍는다' 라는 표현을 쓰면 왠지 작업자들에게 미안하다. 이제는 정말 프로그래밍의 영역으로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고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드 스쿨 하드웨어 장비를 정말 태어나서 단 한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세대가 주류로 올라왔기 때문에 새로운 곡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MPC의 로저린 그루브의 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결론은 역시 Groove is on your mind 다. 그루브는 니 맘속에 있는 것. 

 2편은 여기에서 대략 마무리 짓기로 하고, 3편에서 못다한 이야기들과 21세기에 이 녀석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개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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